[목회서신 276] 하나님의 경고를 들으라.

  파수꾼이란 성벽이나 망대에 올라 적의 침입을 사전에 경계하고 전하는 보초입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하나님의 경고를 전하는 파수꾼으로 부르셨습니다. 파수꾼의 경고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구원을 받지만,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죽게 될 것입니다. 이때 그 피 흘림은 전적으로 그 자신의 책임입니다. 그러나 파수꾼이 칼의 임함을 보고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해 경고의 나팔을 불지 않고 영혼들을 멸망에 빠뜨린다면 하나님은 파수꾼에게 그 책임을 묻겠다고 하십니다(겔33:1-9).

  묵상을 위해 본문 말씀을 펼치는 순간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경고를 전하는 파수꾼의 자리에 자신을 올려놓습니다. 하나님의 파수꾼으로 부름받은 선지자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파수꾼의 사명과 책임을 묵상합니다. 그리고는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가 은사와 소명에 따라 파수꾼의 역할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를 묵상합니다. 그렇게 파수꾼의 사명에 대한 묵상 글을 써 내려갑니다. 나름 그럴듯한 글을 쓰지만, 마음에 울림이 없습니다. 알 수 없는 불편함에 글을 마무리할 수 없습니다. 왜일까요?

  한참을 씨름하며 본문을 다시 읽고 또 읽으며 깨닫습니다. 오늘 이 말씀에서 자신을 두어야 할 자리는 파수꾼의 자리가 아닌 파수꾼의 경고를 듣는 백성의 자리였습니다. 오늘 나는 하나님의 경고를 들어야 합니다. 경고를 듣고 돌이키면 생명이지만 듣지 않으면 사망입니다. 나아가 오늘 교회는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를 대언하는 자가 아닌 세상을 통해 하나님이 전하는 경고를 듣고 돌이키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돌이키면 교회의 생명은 회복될 것입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세계적인 흥행이 장안의 화제입니다. 밑바닥 인생들이 인생역전만 바라보며 서로 죽고 죽이는 데스 게임 드라마의 잔인한 폭력성은 역겨움과 함께 진한 슬픔을 가져옵니다.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그러나 너무나 현실 같은 드라마에 세계인들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딱지치기, 구슬치기, 줄다리기 등 40대 중후반 이후 세대의 향수를 자극할 놀이를 데스 게임의 소재로 활용한 점은 놀랄 만큼 기발합니다. 

  신자유주의 경제체계 아래 국가와 국가, 개인과 개인이 총성 없는 데스 게임에 죽고 죽이는 현실이 어쩌면 드라마보다 더 비극적인지도 모릅니다. 오징어 게임은 참가자 중에 과반수만 반대해도 언제든지 게임을 멈추고 자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참가자들은 거액의 상금에 눈이 멀어 끝까지 멈추지 못하고 죽음의 질주를 합니다. 오징어 게임 속 그들처럼 현실 속 우리도 극한의 자기 이익에 함몰되어 영혼마저 빼앗긴 채 죽고 죽이는 데스 게임을 멈추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 비극의 데스 게임을 멈추게 할 수 유일한 희망이 되어야 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마저도 죽고 죽이는 게임에 앞장서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오징어게임>에는 3명의 기독교 관련 인물이 나옵니다. 이 인물들을 통해 보여주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너무 사이비적이어서 공감보다는 불편함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속 3명의 인물이 기독교를 향한 비하를 넘어 교회와 그리스도인을 향한 파수꾼의 경고로 들리는 것은 저만의 착각일까요?

  첫 번째 인물 ‘기도 아저씨’는 위기를 당할 때마다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며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고 혼자 살려고 발버둥 칩니다. 그러다가 징검다리 건너기 게임을 할 때는 길을 건너지 못하고 주저하는 앞사람을 뒤에서 밀어 죽인 후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합니다.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고 어린양의 피를 외치지만 그는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입니다. 

  그에게 신앙은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그에게 하나님은 오직 일그러진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켜주어야 하는 능력자일 뿐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따르는 자가 아닌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기도 아저씨를 통해 하나님을 이용하려고만 하는 우리를 경고하십니다.

   두 번째 인물 ‘목사의 딸’은 자신의 상처를 고백하면서, 어머니를 칼로 찔러 죽인 아버지를 자신이 칼로 찔러 죽였는데 그 아버지가 목사였다고 말합니다. 그녀의 회상 속에 등장하는 아버지 목사는 반복적으로 딸을 성폭행하지만 매번 회개기도로 죄책감을 씻어버리는 속편한 목사입니다. 

  그는 겉은 신앙 좋은 사람처럼 보이지만 속은 곪아 썩어 문드러진 위선적 신앙인의 전형입니다. 가장 가까운 이웃인 아내와 딸을 살인하고 성폭행하는 그가 어떤 미사여구로 하나님을 찬송한다 해도 그것은 모두 거짓입니다. 우리의 은밀한 내면을 감출 수 없는 가족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신앙은 가짜입니다. 하나님은 목사의 딸을 통해 위선과 거짓에 갇힌 우리를 경고하십니다.

  세 번째 인물 ‘예수천당 불신지옥 아저씨’는 주인공이 결박당한 채로 거리에 던져졌을 때 가장 먼저 발견해 풀어줍니다. 하지만 정신을 잃었던 사람이 눈을 뜨자 처음 하는 말이 “예수 믿으세요”입니다.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쓰러져 막 정신을 차린 사람에게, 그것도 손발이 묶여있는 사람에게 밑도 끝도 없이 예수를 전하는 그의 신앙은 너무나 맹목적입니다.

  그는 예수를 전해야 한다는 자기 사명에 함몰되어 예수를 전해야 하는 그 사람은 잃어버렸습니다. 그는 예수를 전하지만 예수의 정신을 따르지는 않습니다.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어주었던 사마리아인처럼 ‘긍휼을 베푸는 자가 되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잃어버린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예수의 제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예수천당 불신지옥 아저씨를 통해 예수의 정신을 따르지 않는 우리를 경고하십니다.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전하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을 향한 경고는 많이 불편합니다. 그러나 불편한 경고를 받고 돌이키는 그곳에 진정한 회복의 희망이 있을 것입니다.  

[목회서신 276] 에스겔 33:1-9

2021년 10월 12일 화요일 아침 권종렬목사 

사진] Yellow Card 그리고 Red Card
  축구경기 중 무리한 반칙을 하면 심판은 Yellow Card를 꺼냅니다. 이를 무시하고 또 반칙을 하면 Red Card와 함께 퇴장을 당합니다. 경고는 결코 듣기 좋은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경고를 무시하고 섭섭해하기만 해서는 희망이 없을 것입니다.